미하일 치고린

다른 이름: 미하일 치고린

세계 타이틀에 두 차례 도전했으며 러시아 체스의 토대를 세운 19세기 러시아의 마스터.

설명

미하일 치고린(1850-1908)은 19세기 말 러시아를 대표하는 마스터이자 빌헬름 슈타이니츠의 주요 라이벌 가운데 한 명이었다. 그의 중요성은 국제 대회 성적, 오프닝 아이디어, 러시아에서 체스를 조직하고 보급한 활동을 함께 아우른다. 소련 학파는 그가 세상을 떠난 뒤 등장했으므로 그는 그 학파에 속하지 않았다. 다만 후대 선수들은 그를 중요한 선구자로 인정했다.

클럽에서 국제 최정상급으로

치고린은 상트페테르부르크 체스계에서 입지를 다졌고 성인이 된 뒤 국제 대회에 참가하기 시작했다. 1881년 베를린과 1883년 런던에서 거둔 성적으로 주요 대회에서 우승을 다툴 수 있는 마스터들의 대열에 들어섰다. 이런 경로는 다른 유명 선수들에게서 보이는 어린 신동의 성장 과정과 다르다. 최정상급으로 향하는 길이 각 시대의 기회에 따라 달라져 왔음을 상기시킨다.

1889년 그는 뉴욕의 대규모 대회에서 공동 1위를 차지했다. 1895년 헤이스팅스에서는 해리 필즈버리에 이어 2위로, 당대의 여러 정상급 선수들보다 앞섰다. 전러시아 대회의 초기 대회들에서도 우승했다. 이런 성과는 그의 명성이 단순히 세계 타이틀 도전자였다는 사실에만 기대지 않음을 설명한다.

슈타이니츠를 향한 두 번의 도전

그는 1889년과 1892년 아바나에서 에서 와 겨뤘다. 두 매치 모두 졌지만 두 번째는 특히 치열했다. 1892년 마지막 경기에서 큰 실수로 자신의 킹을 향한 결정적인 공격을 허용하며 매치가 끝났다. 그 실수만 기억하면 매치 전체에서 그가 얼마나 강하게 맞섰는지 놓치게 된다.

두 선수의 경쟁은 체스에 관한 실전적 논쟁이기도 했다. 슈타이니츠는 포지션상의 이점을 체계적으로 설명했고, 치고린은 활동성과 구체적인 검증을 크게 중시했다. 둘은 서로 배타적인 범주가 아니었다. 두 선수 모두 계산했고 포지션에도 주의를 기울였다. 흥미로운 것은 겉보기에 결함이 있는 배치가 어떤 때 기물 간 협력이나 위협 덕분에 성립하는지 살피는 일이다. 상대에게 그 약점을 이용할 시간이 없을 수 있기 때문이다.

활동적인 기물과 독창적인 오프닝

퀸스 갬빗에 대한 치고린 디펜스는 1.d4 d5 2.c4 Nc6로 알아볼 수 있다. 흑은 더 흔한 폰 구조를 갖추기 전에 기물을 전개하고 중앙을 압박한다. c6의 나이트는 활동적일 수 있지만 c 폰 앞의 칸을 차지하므로 가능한 폰 돌파에도 영향을 준다. 이런 가능성과 제약의 조합은 각 변화 수순에서 따로 평가해야 한다.

그의 이름은 루이 로페즈를 비롯한 다른 오프닝의 수순에도 남아 있다. 같은 이름을 쓴다고 해서 그 체계들이 하나의 계획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의 오래 남는 기여는 포지션을 실제 자원에 따라 탐구한 데 있다. 비숍 쌍은 보통 가치가 높지만, 잘 배치된 두 나이트는 공격 목표가 없는 비숍들보다 뛰어날 수 있다. 원칙은 방향을 제시하고, 칸과 템포, 변화 수순이 그 적용을 결정한다.

조직가이자 보급자

치고린은 체스 간행물을 편집하고 클럽을 장려하며 국제 체스를 지켜보고 토론할 수 있는 공동체의 성장을 도왔다. 이 활동 덕분에 경기와 분석은 대규모 대회가 끝난 뒤에도 이어질 수 있었다. 그의 유산을 공부하려면 슈타이니츠와의 매치에 더해 토너먼트에서의 승리도 함께 살펴보며 활동성을 어떻게 얻는지 관찰하는 것이 좋다. 그러면 세계 챔피언에 근접한 도전자뿐 아니라 실전적인 탐구자이자 체스 문화를 일군 인물의 모습도 보인다.

출처

  1. 1.Mikhail Chigorin, Bill Wall / Chess.com
  2. 2.Chigorin, Mikhail Ivanovich, Great Russian Encyclopedia
  3. 3.Chess in the 19th Century: Milestones of 1899, FIDE Historical Committee
  4. 4.The Big Book of World Chess Championships, New In Ch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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