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명
로버트 제임스 "보비" 피셔(1943-2008)는 열한 번째 세계 챔피언이자 20세기에 가장 압도적인 실력을 보인 선수 중 한 명이었다. 1972년 보리스 스파스키를 꺾으면서 1948년부터 이어진 소련 챔피언들의 계보를 끊고 체스를 훨씬 더 넓은 국제 관중에게 알렸다. 그의 기술적 유산에는 오프닝 준비, 정확한 계산, 작은 우세를 승리로 바꾸는 뛰어난 능력이 함께 담겨 있다.
신동에서 세계 타이틀 도전자로
피셔는 열네 살에 1957-1958년 미국 선수권에서 우승했다. 그는 참가한 여덟 번의 미국 선수권을 모두 우승했고, 1963-1964년에는 11전 전승이라는 완벽한 성적을 거두었다. 이는 특정 대회의 기록이다. 경력 전체에 패배가 없었다거나 출전한 모든 대회를 연속으로 우승했다는 뜻으로 혼동해서는 안 된다.
그는 1959년 에 처음 출전했다. 타이틀로 가는 길은 곧바로 이어지지 않았으며 중단도 있었다. 결정적인 주기는 1970년 팔마데마요르카 인터조널에서 시작되었다. 1971년에는 마르크 타이마노프를 6-0, 벤트 라르센을 6-0으로 꺾은 뒤 티그란 페트로시안에게도 승리했다. 이런 연승이 스파스키에 대한 도전을 둘러싼 기대를 설명한다.
레이캬비크와 세계 타이틀
피셔는 1972년 레이캬비크 세계 선수권 매치를 12.5-8.5로 이겼다. 냉전 속에서 그의 성공은 정치적 의미도 띠었지만, 체스판 위에서는 매우 다재다능한 스타일의 챔피언을 상대로 오프닝과 지구력, 적응의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경기에는 공격뿐 아니라 전략적인 결정과 엔드게임도 담겨 있다.
조건에 대한 의견 차이로 그는 1975년 예정된 와의 방어전에 나서지 않았고, 매치를 치르지 않은 채 타이틀을 잃었다. 1992년 스파스키와 다시 매치를 치렀지만 공식 세계 선수권에 포함되지 않았다. 따라서 1992년 결과는 FIDE가 인정한 세계 타이틀을 다시 획득한 것이 아니다.
경기 전 단계에 걸친 정확성
피셔는 자신의 레퍼토리를 깊이 공부하며 세부적으로 이해하는 포지션을 추구했다. 하지만 그의 실력은 오프닝을 잘 마치는 데 그치지 않았다. 당장의 위협이 사라진 뒤에도 압박을 유지하고 기물을 개선하며 상대의 양보를 끌어낸 다음 경기의 성격을 바꿀 수 있었다.
엔드게임의 아주 작은 우세는 상대를 제한하는 기물을 남기는 데 달려 있을 수도 있고, 바로 그 기물을 교환해 패스드 폰을 만드는 데 달려 있을 수도 있다. 테크닉에는 단순히 기물 수를 줄이는 것뿐 아니라 교환의 결과를 계산하고 활동성을 평가하는 일이 필요하다. 원칙과 구체적인 검증의 이런 조합은 그의 경기가 지금도 학습 자료로 쓰이는 이유 중 하나다.
세기의 경기와 그의 책들
1956년 도널드 번에게 이긴 는 피셔의 어린 시절 재능을 접하는 출발점이다. 퀸을 내주는 수는 기물 간 협력과 기물을 되찾으면서 주도권을 유지하는 위협 덕분에 성립한다. 도널드 번은 그의 형제 로버트와 혼동해서는 안 된다. 로버트도 뛰어난 선수였으며 피셔의 또 다른 상대였다.
1969년에 출간된 My 60 Memorable Games에서는 분석가로서 그의 목소리를 접할 수 있다. 경력을 멋지게 보이게 하려고 고른 승리만이 아니라 실수와 무승부, 패배도 실려 있다. 실제로 둔 결정과 그가 검토하는 대안을 비교하고, 상대의 어떤 대응 수단이 평가를 바꾸는지 물으며 읽으면 도움이 된다. 이런 습관은 그를 기록이나 1972년의 정치적 맥락으로만 축소하지 않고 엄밀함에서 배우도록 해 준다.
주석이 달린 경기
출처
- 1.Robert Fischer, FIDE Open Chess Museum
- 2.Robert James Fischer, World Chess Hall of Fame
- 3.My 60 Memorable Games, Wikipedia, bibliographic references
